장준하 ‘실족사’ 끝나지 않은 의혹
경사 75도, 높이 14m 암반서 굴러떨어졌다는데 외상없고
최후 본 유일한 목격자 김용환 사고 뒤 갑자기 교사로 취직의문사위선 “규명불능” 발표
1975년 8월 장준하 선생이 숨진 뒤 37년 동안 타살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장 선생이 60·70년대 37번의 체포와 9번의 투옥을 무릅쓰며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맞섰던 숙명의 정치적 라이벌이었기 때문이다.■ 37년간 이어진 장준하 타살 의혹 장 선생 사망 당시 경찰은 장 선생이 1975년 8월17일 산악회원 40여명과 함께 서울에서 버스로 2시간 거리인 경기도 포천시(당시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489m)에 올랐다가 높이 14m의 낭떠러지에서 ‘실족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지방에서 올라왔다가 산행에 합류한 ‘김용환’이라는 인물이 유일한 목격자였다. 김용환은 장 선생이 출마한 총선 때 자원봉사자로 활동했으나 산행 이전 몇 년 동안 만난 적이 없었다. 그날 일행이 약사봉 샘물터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사이 장 선생과 김용환이 따로 산길을 올랐다가 다시 일행 쪽으로 내려오는 길의 비탈에서 실족했다는 것이 당시 경찰의 발표 내용이었다.
장 선생 타살 의혹은 1970~80년대 군사정부 시절에는 입소문으로 나돌다가, 1993년 문민정부 출범 뒤 민주당이 ‘장준하선생 사인규명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다시 공론화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의혹으로 머물러왔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을 다시 조사한 뒤 ‘진상규명 불능’이란 판정을 내렸으나, 목격자 김용환이 장 선생 사망 뒤 갑자기 고등학교 교사로 취직한 사실, 그의 일관성 없는 진술, 장 선생 주검에서 추락 흔적이 거의 없는 점 등을 들어 “과거 수사 결과는 대단히 신뢰하기 어렵다”고 발표했다.
광복군 장교로서 국내 진공작전을 위해 미국 정보기관(OSS) 대원을 자원해 특수 게릴라 훈련을 받았다. 일본의 항복 뒤인 1945년 11월23일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미군 수송기로 귀국해 김구 주석의 수행비서로 일했다.
원본 URL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47160.html
과거는 문서나 유물로 보여지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되고 뒤틀린 것에 대한 분명한 반성이 우선되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일제침략기는 과거여서, 지나갔으니까 어쩔 수 없다
일본의 위안부...? 강제 여성 성착취!!! 여성의 존엄성 훼손!!! 에 대한 것도
과거여서, 지나갔으니까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는
옆동네 섬나라 사람들하고 무엇이 틀리단 말인가.
